눈에 비친 청록

오랫동안 시골을 미워했다. 그렇지만 시골에 있는 청록은 미워할 수가 없다. 아마도 서울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색이기 때문일 것이다. 살고있는 집 근처 몇 차선씩이나 되는 도로 건너편에는 큰 호수 공원이 있다. 시골에도 물론 그만한 생태계가 있다. 집 앞 호수는 자연스러움으론 시골의 그것과 비교가 안 된다. 사람을 위해 아스팔트를 깔아둔 인도와 그런 건 상관 없다는 듯 울퉁불퉁하고 잡초가 마구 자란 길 중 나는 왜 후자에 더 마음이 가는지 모르겠다.

박완서 선생님의 「호미」에는 수십 개의 수필이 실려 있다. 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선생님이 보았던 풍경을 나도 본다. 그의 청록이 내게 오는 것이다.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나의 고향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수순이었다. 그는 시골보다는 집 앞의 뜰과 생명체들에 대해 주로 이야기했지만. 90년대 후반에 태어난 내가 말하는 시골은 흔한 시골과는 결이 다를지도 몰랐다. 내가 태어난 직후에는 거의 모든 것들이 급격하게 성장했고 나는 그 소용돌이의 한복판에서 자랐으니까. 아무튼 이런 나에게도 촌의 청록은 마음 한편에 생생히 살아있다. 미운 것 사이에 있는 좋은 청록에 대해 썼다.

어부

가장 오래 살았던 아파트 아래에는 긴 강이 있었다. 강 위에는 사람들이 오고 갈 수 있는 두꺼운 다리가 지어졌다. 그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강 냄새를 맡으며 다리를 건너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. 언젠가는 같은 동네의 열 살, 아홉 살, 그만한 또래 애들끼리 다 같이 강으로 내려갔다. 강과 도로를 구분짓는 돌들을 손으로 붙잡고 내려가면 발을 딛고 설 다른 돌들이 깔려있었다. 돌 틈 사이에는 자그마한 게 몇 마리가 지나가고 있었다.

게를 보고 웃고 떠들다보니 어느새 일곱 시가 되어갔다. 누군가가 이제 집에 가야 한다고 말했지만 다들 듣는 체 마는 체 했다. 조금 뒤 우리는 모두 보호자의 손에 이끌려 강제로 귀가했고 손과 매로 얻어맞았다. 위험한 행동을 했다는 이유였다. 나는 내 방에서 혼이 났다. 훌쩍거리면서 눈치를 보다 방문을 열자 어느새 큰이모가 와있었다. 큰이모는 커다란 대야를 앞에 두고 해산물을 솎아내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.

내가 아는 사람 중 어부로 산 시간이 가장 오래된 그는 능숙하게 무언가를 따고 옮겼다. 그의 등에서는 바다 냄새가 났다. 육지에 있는 시간보다 바다에 있는 시간이 더 긴 사람에겐 자연스러운 일이었다. 나는 슬쩍 그의 옆으로 가서 내가 게를 잡았다고 말했다. 게를 여기까지 데려오지는 못했지만 진짜로 잡았다고 말했다. 이모는 손을 멈추지 않고 대단하다고 대답하며 웃었다. 나보다 훨씬 큰 게를 잡을 수 있는 사람의 웃음이었다.